May the funk be with you! (음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합니다)
by BaronSam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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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구를 보자
잡지를 시작한다는 것은 역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소한 공동의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공동의 사고를 한다는 것은 예상할 수 없는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다.
- 어빙 하우 <미국의 사회주의> 서문.

부르주아 계급의 소녀는 무익하게, 우매하게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산출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산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 R.B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서론부의 번역 완결을 조촐하게 자축하자.
블로그를 열어 리키 빈센트의 책을 번역하고 funk를 소개하기로 한 지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다. 가끔 호기심에 내 블로그의 통계를 열어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알아보려고 들어 온 사람들, 어쩌면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될 얘기도 해줄 수 없을 사르트르나 메를로 퐁티의 이름으로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국적을 증명해주는 유럽 열국들의 도메인 주소와 외국 블로거들의 낯선 이름들만이 반길 뿐이다.

어릴 적, 만장한 미술가들의 명작들을 다 보았어도 유독 마음에 끌리는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해문 출판사의 UFO나 괴기 사건을 다룬 조잡한 해적판 번역서 뒷면에 외계의 행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아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철이 들고나서 그 그림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 산성'의 조악한 판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예술의 힘이 보편적인 관념에 기초한 설득이나 합의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일종의 주관적 황홀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볼 때, 그러한 사소한 문제가 여전히 그 그림에 매료되었던 어릴 적 기억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득 그 그림이 생각난다. 물론 개인사적인 문제들이 약간은 결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국내 유일'이라는 달갑지 않은 화관을 쓴 채로 과연 이 블로그를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틀어도 책을 번역해도 읽고 듣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을 꼽지 못하고 그나마 외국의 훵커티어들이 줄기차게 찾아와 한글의 벽에 무릎을 꿇을 때, 차라리 블로그스팟 같은 데서 영문 블로그를 열면 낫지 않을까도 생각했으나 유치한 영어 실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그러다 그 그림으로부터 문득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떠올리게 되었다. 외따른 행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소년을 누군가는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던 소년을 응시하던 시선, 그것은 화가의 시선이었다. 처음 이 블로그를 열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훵크를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매료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라도 이 게으른 인간이 영어 문장을 놓지 않도록 채찍질하고, 시간의 더미 속으로 파묻혀 가던 수많은 그리고 뛰어난 재능의 아티스트들(내가 아니면 이 고립무원의 조선 반도에서 누가 모리스 머사이어나 에너스 스크러긴스의 이름을 불러 줄 것인가.)를 막연한 대중의 입 속으로 끌어올리고 훵크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초보적인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했었던 것이 아닌가. 찾아주거나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게다가 정말로 운이 좋다면 누가 아는가! 그 유명한 도서관 사서 (이름이 '르네'였던가, 본인은 정작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앙리 베르그송과 그 동세대의 철학자들에게 책을 권하고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와도 같이 새로 태어날 훵커티어들에게 풍부한 '자양'이 되어줄지. 결국 이 외로운 소년은 해변으로 나와 지구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인다.(발레리여, 용서하소서)

그래, 다시 지구를 보자.
by BaronSamdi | 2009/07/18 11:26 |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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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oolkat at 2009/07/18 12:03
드디어 끝내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BaronSamdi at 2009/07/19 10:40
조촐한 자축이지요.
Commented by 나비의비행 at 2009/07/19 14:00
아 계속 언젠가 한마디 써야지..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한자 쓰네요. 저는 이 블로그를 발견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해박한 음악적 지식은 없지만 funk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 정치적인 사람으로, 내 음악적 문화적 취향도, 정치적 성향도 왜 외로운 걸까. 생각했었는데, 처음에 뭐 이런 데가 있지? 하고 너무 신기하고 좋았답니다. 분명 의미있는 일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완전 응원한답니다. ^^
Commented by BaronSamdi at 2009/07/19 22:37
훵크의 역사 얘기만 해서 되게 재미없죠? ㅎㅎ 음악을 좀 많이 틀어야겠는데 정말 애정이 있는 곡들은 못틀겠더라고요. 잘 소개해야 된다는 강박이 생겨서요. 응원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giantroot at 2009/07/22 23:22
바롱삼디님의 노력이 분명 후대 한국 Funk 팬들의 지침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힘내시길.

좋은 음악 소개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BaronSamdi at 2009/07/23 10:32
퇴근 후 10분씩 번역하는게 노력이라면 좀 쑥스럽네요^^ 뭐 알아달라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숨어있는 훵크팬들과 활발한 교류를 기대했는데 제 블로그가 안알려져서 그런가봐요 ㅎㅎ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큐팁 at 2009/07/26 00:29
동감합니다.
이글로 크게 숨 고르시고 다시 출발하시는거죠 뭐!
그나저나,
해문이 아니라 금하출판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금하라는 이름 들으시면 삼디남작님도 옳거니 하실듯!)
왜냐하면 저도 그 그림에 너무 매혹되었기에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다만 저는 지구의 소년이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또다른 행성을
본다고 생각했습니다.ㅎㅎ근데 그게 르네 마르그리트의 그림인 줄은
이제서야 알았네요. 완전 감사드려요!
Commented by BaronSamdi at 2009/07/26 14:41
금하출판사였군요. 큐팁님 덧글이 있으므로 본문은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마그리트 그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은 오로지 제 생각이구요. 그 그림을 그렇게 읽어낼 수도 있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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