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 3-2. 블루스에서 록으로

블루스에서 록으로


블루스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릴로이 존즈가 <블루스 민중Blues People>에서 쓰기를, 블루스는 미국의 아프리카인들이 자신들이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시작되었다고 한다. 블루스는 가수에게는 해방의 도구이다. 그 가수의 명예 회복과 구원은 진실을 표현할 때 발견된다. 가끔 비탄조이거나 음울하기는 했지만, 그 표현은 슬픈 노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불경스러움과 유머라는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항상 스윙이 있었는데, 천천히 그리고 낮은 스윙의 진행은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우울함과 블루스 음악은 함께 작동하는 듯하다. 블루스 연주자들은 더욱 풍부하고 조화로운 사운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장 태고의 영적이고 리듬의 근원에 가까운 소리인, 인간의 목소리에 가까운 음색을 얻기 위해서 폴리리듬, 선창과 후창, 그리고 관습적이지 않고 무조(無調)형식의 음계 등을 모두 사용했다.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는 많은 토속적인 블루스맨들 중의 하나로 도시에 블루스를 소개한 인물이었으며 블루스를 모든 형태의 변화에도 열어두기도 했지만, 그의 감성은 일요일의 교회 부흥회만큼이나 전통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블루스에 대해서는 당신도 알다시피, 그 음조, 헤비한 비트를 더한 깊은 음조가 있단 말이죠.....가장 뛰어난 블루스 가수들은 교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나도 내가 설교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블루스가 바로 이런 설교에 매우 가깝죠. 내 구슬픈 목소리와 떨림이 좋다고들 하는데 이게 다 교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워터스는 미시시피 태생의 걸걸한 음색을 가진 블루스 가수로서, 전설적인 블루스 작곡자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에 대해 알아보고 있던 앨런 로맥스Alan Lomax에 의해 발굴되었다. 워터스는 전기 기타에도 잘 맞았고, 백 비트에 대한 강조는 훗날 록에 이어 훵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때 데이비드 헨더슨David Henderson에게 말하기를, “드럼 비트 다음에 쭉 떨어지는 소리(big drop, 역자 주 - 음의 높이가 낮아지며 사라지는 drop off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가 내 블루스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별 거 없어요. 그냥 쭉 그리고 헤비한 비트로 가는 겁니다.” (“Electric Mud"를 들어보라.)

워터스는 1960년대 후반, 비비 킹B.B. King, 바비 (블루) 블랜드Bobby (Blue) Bland 그리고 하울린 울프Howlin' Wolf와 같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렉트릭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다. “백인 기타 영웅들의 찬미”와 같은 넬슨 조지Nelson George의 표현에서 보이듯이, 당시의 젊은 세대는 갑자기 인종 차별을 없애려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바로 이러한 사회 발전의 괴상한 측면을 통해서, 이 블루스의 거인들은 갑자기 초대형 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앞문’ (당시 흑인들은 뒷문으로 다녀야 했다.)으로 드나들 수 있었으며 아무리 장황하게 연주를 끌더라도 어느 때건 이전보다 더 나은 보수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갑자기 변덕스러운 백인 관객들을 사로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부 해안 지역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변덕스러운’ 백인 관객들이 흑인 연주자들의 60년대 소울 사운드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지역은 정치, 재즈, 그리고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 그리고 산타나Santana와 같은 그 지역의 많았던 흑인과 백인이 섞여있는 밴드들에서와 같이 다인종적인 유대감 속에서 성장해갔다. 사람들 속에서 다양성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며 문화적인 혼종이 일어나자, 음악에서 새로운 관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서부 해안 지역이) 도회지인 북부와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의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또한 도움이 되었다. 서부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상상력과 강렬함을 지닌,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흑인 록의 창시자인 지미 헨드릭스가 (흑인, 백인, 아시아인의) 인종이 혼합된 서부의 도시, 시애틀 출신이라든가 슬라이 스톤이 (흑인, 백인, 중남미인이) 섞여 살던 서부 해안 지역의 캘리포니아, 발레호 출신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헨드릭스가 그의 전 경력을 통하여 블루스 작법에 충실했고 슬라이는 그 시대의 댄스 음악의 선구자였던 반면, 그 둘은 모두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 사운드와 스타일의 유기적인 구성을 창조해냄으로써, 초기의 가장 중요한 흑인 록과 초기 훵크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훵크에 대한 사이키델릭 록의 영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이는 단순히 R&B의 훌륭함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발표할 때마다 인종적인 (그리고 음악적인) 정형성을 뿌리 뽑으면서, 지미와 슬라이는 사회의 새로운 전망을 노정하기 위해 로큰롤에 내재한 자유를 이용했다. 이 전망은 “미국 사회의 흑인”들이 만들어낸 사회 혁명에 의해 야기되었고 또한 흑인들에 의해 명료해진 것이다. 상징적으로 그 당시는 흑인들의 시대였다. 지미와 슬라이가 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젖히고 오로지 훵크 밴드만이 정당하게 추종할 수 있는 유산을 만들어냄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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