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funk be with you! (음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합니다)
by BaronSamdi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태그 : 소울
2009/10/04   <Funk> 2-15. 대부 : 소울 파워
2009/04/11   <Funk>18. - 훵크와 소울 비밥 [4]
<Funk> 2-15. 대부 : 소울 파워

7장

대부 : 소울 파워

“우리가 이 세션을 마치고 나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훵크가 나왔는지 알게 될 겁니다.”
- 제임스 브라운


제임스 브라운

제임스 브라운은 1933년 5월 3일에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반웰 외곽 소나무 숲에 위치한 단칸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브라운이 4살이 되던 해 이혼했고, 그의 아버지는 어린 브라운을 부양하기 위해 그를 내버려둔 채 장시간 일을 해야 했다. 오두막집을 전전하면서 살던 그는 6살이 되자, 조지아 주 어거스타의 고모가 운영하는 매음굴로 이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도박, 밀주 그리고 매춘” 사이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그는 춤을 춰서 돈을 벌기도 하고, 구두도 닦고, 목화도 땄으며, 운동도 하고,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다 마침내 물건을 훔치기에 이른다. 그는 여러 번 “복장 불량”을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와야 했다. 15살이 되어 코트를 훔치기 위해 차를 부순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가스펠 합창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는데, 이는 3년 후 가석방으로 출옥했을 때, 연예인으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제임스 브라운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음악가로 인정받았고, 좋은 매너와 매력적인 품성 그리고 일에 열성적인 모습을 통해서 교회 사람들 혹은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이집 저집을 전전할 수 있었다. 브라운에게 내려진 대부분의 법정 판결은 미국의 가혹한 사회 체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그에게 동정적인 흑인 공동체의 네트워크 덕택이었다. 브라운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의 첫 번째 밴드 지휘자였던 바비 버드Bobby Byrd의 어머니가 그를 집에 받아들였고, 버드 가족의 관대한 보살핌은 이후에도 성심껏 이어져 브라운의 음악 제국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52년, 바비 버드의 가스펠/ 두-왑 그룹에 참여한 뒤, 그는 번개같이 빠른 몸놀림, 다리 찢기splits, 미끄러지는 발놀림slides 그리고 낙타 걸음camel walk 덕분에 차츰 밴드의 중추가 될 수 있었다. 후에 이 밴드는 '플레임즈The Flames'가 된다. 플레임즈는 곧 랠프 베이스Ralph Bass를 만나서 신시내티의 킹 레코드 산하의 페더럴 레코드와 계약을 맺는다. 이 그룹은 혹독하게 투어를 돌고, 노래를 하고, 역경을 견뎌내면서 점점 쇠락해버렸다. 제임스 브라운의 1956년 작 “Please, Please, Please”는 서서히 그리고 마침내 R&B의 고전이 되었고, 1958년에 뒤이어 발표한 “Try Me”가 그를 전국적인 스타의 위치로 높이 쏘아올렸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아폴로 극장의 공연에서 콘서트를 주최했고 이 실황을 녹음해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최초의 성공적인 흑인의 콘서트 실황 음반이었다. 이 앨범은 이내 팝 차트 정상으로 솟아올랐다. 1963년이 되기까지 브라운은 수많은 댄스 히트곡과 발라드 곡을 레퍼토리로 삼는 흑인 음악계의 최고의 거두였으며 그의 호소력은 인종적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호텔 라운지와 대학의 학생 회관에서부터 화려한 R&B 댄스 홀과 시의 음악당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브라운은 나타날 때마다 작은 소용돌이를 휘몰고 다녔다. “제임스 브라운이 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하던 짓을 멈추고 돈을 모았죠.” 피 위 엘리스는 (제임스 브라운의 전기) 작가 신시아 로즈에게 아무런 과장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거다! 하면서 모두가 몰려 갔지요.”

브라운은 그의 음악을 보다 색다르고 재즈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 형태로 편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기들을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방식으로 넣기도 하고 빼기도 했다. 재즈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잼 세션은 무대 위에서나 스튜디오 안에서나 그의 창조성 속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제임스는 그의 밴드로부터 영혼을 쥐어짜냈고 그 결과물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배치했다. “당신도 그걸 따라잡으려면 머리를 좀 빨리 굴려야 했을 겁니다.” 색소폰 연주자 메이시오 파커Maceo Parker가 1990년 로즈에게 한 말이다. “일례로 많은 솔로 연주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가 이름을 크게 외치면 그냥 목청껏 불어야 했지요. 흘러가는 연주에 잘 맞아 들어가기를 바라면서요.” 그것이 바로 "임프로비제이션(즉흥성)improvisation"이었다. 임프로비제이션(즉흥성)은 이 소울 대부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 제임스 브라운 음악의 엔진을 가동시켰다. 대중들의 추측과는 반대로, R&B 가수로서의 그의 명성은 그의 예술적 취향에 비하면 너무 협소한 것이었다. “나는 결코 R&B 가수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로 분류될 뿐이죠.” 그는 1986년에 기자인 츄이 발레라Chuy Valera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음악은 가스펠과 재즈, 그리고 소위 훵크와 소울이라고 불리는 것들로부터 왔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훵크와 소울이야말로 진정코 재즈가 아닐런지요.” 그의 밴드 지휘자들이 뛰어난 재즈 연주자였던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훵크 태동기의 밴드 지휘자였던 앨프리드 “피 위” 엘리스는 1965년 밴드에 들어올 당시, 위대한 색소폰 주자 소니 롤린스의 음악을 연구하고 있었다. 1964년에서 1974년까지 부정기적으로 밴드 지휘자들 맡았던 프레드 웨슬리는 항상 “실패한 비-밥 트롬본 주자”를 자처했으며, 70년대 훵크 세션을 마치자마자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함께 연주를 계속했다. 브라운은 드럼 세트를 조직하는 방법을 개발해냈으며, 밴드의 모든 것을 멜로디보다는 그루브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혁명이다.

by BaronSamdi | 2009/10/04 21:17 | | 트랙백 | 덧글(0)
<Funk>18. - 훵크와 소울 비밥

훵크와 소울 비밥


훵크와 소울이 음악적으로 리듬 앤드 블루스의 직계라면, 훵크와 소울의 이상(理想)은 재즈로부터 왔다. 2차 세계 대전은 더 깊고, 더 지적이고, 인습에 저항하는 음악의 탄생이 가능했는데, 이 때 주로 흑인들이 연주하던 음악이 비밥이다. 이 음악은 사운드 면에서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사실 이 음악의 사운드는 들쭉날쭉했고 톤은 비밥이라는 이름 그대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리 튀고 저리 튀었으며 괴상하고 즉흥적인 정서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밥의 사명이었으며, 스윙의 단조로움이나 점프 캄보(소규모 흑인 댄스 악단), 리듬 앤드 블루스의 연극성에 대한 반동으로써, 이 진정코 지성적인 미국 흑인의 예술적 표현은 도시의 깊은 밤 속에서 숙성되었다.

밥을 연주했던 진지하고 체계적인 음악가들은 백인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서부 해안에서 보다 “쿨 cool"이라고 불리는 보다 듣기 좋은 재즈 장르가 나타났다. 쿨은 일반 청취자들에게는 보다 접근하기 쉽고 흥얼거리기에도 좋은,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백인들이 연주하기 좋은 음악이었다.

“쿨”은 종종 “소울”이나 “훵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하드 밥”의 저항을 받는다. 그 음악은 시끄러웠고, 한 개 정도의 코드로 연주되었으며, 흑인들의 소박한 경험에 대해 노래하는 가스펠 스타일을 종종 차용하기도 했다.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와 피아노 주자인 호레이스 실버는 재즈의 경향 속에서 “훵크”로 교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훵크”는 흑인들의 뿌리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반면 색소폰 주자 아치 셰프와 같은 다른 연주자들은 흑인들의 삶과 문화에 나타나는 남부 흑인들의 스타일을 무대 위에서 통렬하게 비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후반까지 재즈 뮤지션들은 블루스 가수들을 대체해 음악적 저항의 기수자리를 차지했다. 소니 롤린즈의 "Freedom Suite", 맥스 로치의 선구적인 "Garvey's Ghost", 그의 아내 애비 링컨과 함께 한 "We insist - The Freedom Now Suite" 그리고 아치 셰프의 "Malcolm, Semper Malcolm" 등과 같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들이 이러한 조류에 속한다. 남부 흑인적인 취향은 "Black Groove", "Filet of Soul" 그리고 “Ribs and Chips"와 같은 곡들에 녹아들었는데, 이 모두가 재즈에 대해 새롭고 연속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재즈를 엄연한 흑인적 표현양식으로 재창조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이었다.

이로서 하드 밥을 지칭할 용어는 “훵키”가 되었다. 흑인 재즈 뮤지션들은 그들의 무기인 훵크로 마침내 흑인들 자신에 고유한 것을 갖게 되었다. "Barrel of Funk","Big Hunk of Funk", "Waltz de Funk","Funk Underneath","Opus de Funk"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곡들이 흑인들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프랭크 커프스키 Frank Kofsky가 설명하기를,

훵키는 다른 많은 외래어들과 같이 (chozzerei, shlemeil, mensh, mazel tov 그리고 다른 많은 유대인어와 같이) 흑인들의 독특한 표현양식이다. 표준 영어에서는 훵키와 정확한 동의어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곡이나, 노래의 구절 혹은 연주자가 “훵키”하다함은 일반적인 칭찬일 뿐만 아니라 그 칭찬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탁월한 흑인성을 갖췄다는 찬사이기도 하다.

훵크는 너무 널리 퍼져서 다소 빠르게 남용되었고 “소울”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했다. 찰스 밍거스의 곡 “Better Git In Your Soul”은 그 사운드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소울 음악의 대중적인 유행이 라디오 방송을 강타하기 한참도 전에 이 “소울 브라더”(찰스 밍거스)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의 재즈 클럽에서 그러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흑인 음악가들이 그들의 뿌리를 찬양하기 위해서 비밥과 같은 지성적인 형태의 음악을 하는 것은 실제로 꽤 급진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고급 문화에 관한 널리 알려진 지혜는 고급 문화가 “하층민들”과 동떨어져 있고, 재즈라는 고급 예술은 기층 흑인 민중들의 일반적인 블루스적 취향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미학 (블루스 미학과 재즈 미학)의 융합은 흑인 의식에서의 혁명을 대변했다. 리로이 존즈에 따르면 하드 밥 운동은 “흑인 혁명”의 주춧돌을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존즈의 설명에 의하면,

금세기 초, 흑인들의 북부 이동만큼이나 흑인 정신성에 있어서도 진보가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의 원천이라기보다는 “뿌리”라는 값진 재산을 가진 검둥이라는 관념은 아마도 금세기 초까지의 흑인 의식에서 일어난 가장 심오한 변화였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 흑인 민권 운동의 여명기에서 재즈를 보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트) 블레이키, (호레이스) 실버 등의 아티스트들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정부 정책이 장점은 있으나 미심쩍다고 예견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 인종간 융화가 시작되던 시기에서 환영처럼 자신들의 뿌리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형식적으로나마 더 넓은 범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많은 인종 분리를 위한 제도들이 붕괴되고 훵크가 대중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건이었다. 흑인 민중의 뿌리에 대한 긍정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정열에 의해 형성된 하드 밥의 이데올로기가 1960년대에 등장할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훵크는 재즈 뮤지션들의 “흑인 의식 Black Consciousness" 즉, 흑인 혁명을 확증하게 될 의식을 향한 진보의 아주 필수적인 요소였다.

1960년대는 정치적, 지역적 그리고 경제적 장벽을 뛰어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투쟁에 기여하던 흑인 민중들과 음악을 통하여 흑인들의 단결과 인종적 자부심을 과시하게 해주는 상징을 결합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훵크는 다양성과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단결력 - 위대한 통합의 정신을 반영한다.

by BaronSamdi | 2009/04/11 11:03 | | 트랙백 | 덧글(4)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근래 듣는 음반들. 09.08.04.
by Vibe Banquet
음악문답
by Vibe Banquet
Junior - Too Late (ft..
by TonySoul
북을 치다. 뒤에서.....
by sowing seeds for tomo..
Graham Central Statio..
by 야무진 B급 인생
Chic - Soup for one
by 야무진 B급 인생
라이프로그
태그
rss

skin by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