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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제임스브라운
2009/12/06   <Funk> 2-24. 제임스 브라운의 보편성 Pt. 2
2009/12/02   <Funk> 2-23. 제임스 브라운의 보편성 Pt-1.
<Funk> 2-24. 제임스 브라운의 보편성 Pt. 2

제임스 브라운은 비즈니스를 위해 모인 장소에서 다툼을 벌이다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주 경계까지 도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1년 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이후 3년간, 브라운은 농담과 조소, 더 많은 샘플링, 더욱 뼈아프게도 감사와 지지를 위해 열린 몇몇 대형 쇼의 대상이 되었다. 법적인 문제들과 가정에서의 학대와 관련해 가족들이 낸 탄원들은 음악 산업과 사려 깊고, 경험 있는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흑인 문화권 내에서의 그의 권위를 깎아내렸다. 제임스 브라운은 이후로도 힙합에서의 부정적인 가사에 대해 공적으로 반대 의견을 취했고, 남을 비난하는 목적으로 그의 음악이 샘플되어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긍정적 이미지의 결여와 부정적인 음악이 흑인 사회의 자립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확신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브라운은 1993년 인터뷰에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생각은 이 미친 음악(과격한 가사의 힙합) 때문에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어요. 문화 전반에 걸쳐 이것은 진정한 손실이에요. 이것은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의 기초를 위협하는 손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음악은 우리 여성들을 깎아내리고, 당신 자신을 깎아내리고 심지어는 당신이 아무 생각도 없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이제 이 어린 친구들이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그러한 음악들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몇몇 음악은 괜찮겠지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설적인 비판이 있거나 긍정적이기만 하다면. 욕만 안 쓴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게 다 쓴다면 결국 당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임스 브라운이 우리 곁에서, 요동치고, 명료하고 살아있는 전설로 있었던 반면, 시대의 화제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더 이상 높은 안목을 자랑할 수 없었다. 그가 진지한 공적 관심사로부터 떨어져 있게 됨으로써, 흑인과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흑인 민족들은 비극적인 상실을 겪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나 프린스Prince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공연 투어를 하고 있었던 반면, 대부는 점점 더 언더그라운드에서 처음부터 그를 따랐던 흑인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대부와 함께 연주했던 메이시오 파커는 “모든 것이 정말로 제임스 브라운을 중심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나도 훵크, 퓨전 재즈, 댄스 뮤직, 그리고 위엄을 갖춘 힙합 곡들과 같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제임스 브라운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by BaronSamdi | 2009/12/06 22:28 | 트랙백 | 덧글(0)
<Funk> 2-23. 제임스 브라운의 보편성 Pt-1.

제임스 브라운의 보편성


1984년에 최초의 힙합 아티스트Hip Hoppers들이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거리의 조직자이자 파티 디제이에서 힙합의 중견이 된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가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Unity”라는 타이틀을 걸고 멋진 듀엣을 만들어냈다. 이 곡은 매우 시끄러워서 몇 년이 지나서야 다른 곡들이 거친 면과 시끄러운 힙합 제작 스타일 면에서 이 곡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싱글 커버에서는 브라운과 밤바타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썼다. 그 때까지 아주 소수의 아티스트들이 소울의 대부에 대해 이와 같은 존경을 표했을 뿐이다.

1985년이 되기까지 브라운은 전 세계적인 히트곡 “Living in America"가 만들어낸 제임스 브라운 르네상스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팝 차트에서의 피상적인 성공은 흑인들의 세계in da hood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1986년이 되자, 래퍼들은 제임스 브라운의 오래된 곡들에서 리프를 따오기 시작했다. 뉴욕의 랩 그룹 에릭 비 앤드 라킴Eric B & Rakim은 “I Know You Got Soul”을 기반으로 해서 곡을 썼는데, 이는 (바비 버드에 의해 1971년에 발매된) 제임스 브라운의 곡이었다. 이 곡은 클럽에서 크게 히트했다. 하지만 앨범 크레디트에서 브라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롭 베이스 앤드 디제이 이지 록Rob Base and DJ Easy Rock의 1988년 댄스 차트 히트곡 “It Takes Two”에서는 쉴 새 없는 퍼커션 효과에, 비트마다 비명과 외침이 이목을 끄는데, 이는 제임스 브라운 시대의 곡의 샘플이다. 이 음반은 전자 악기가 사용되었고, 쉴 새 없이 진행되었다. (반복되는 트랙은 린 콜린스가 부르고 제임스 브라운이 프로듀스한 “Think About It"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롱 아일랜드 출신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는 1987년 여름, 멋진 12인치 싱글 "Rebel Without a Pause"로 돌풍을 일으켰는데, 이 싱글에서는 제임스 브라운이 1970년 발표한 연주곡 “Funky Drummer”를 드럼 트랙으로 차용했으며, 1972년 제이비스의 연주곡 “The Grunt"에서 메이시오의 찢어지는 듯하는 색소폰을 반복시켰다. 그 음반은 클럽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곡의 원전들이 앞으로 더 나타날 것임은 분명해졌다. 묻혀있던 제임스 브라운 사운드가 바깥으로 나왔고 제임스 브라운은 그 자체로 ‘물건’이었다. 1988년이 되자 문자 그대로 모든 래퍼들이 제임스 브라운의 곡을 샘플해서 자신들의 음반을 녹음했다.

묘한 호소력이 있는 이러한 훵크 샘플들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옛날 음악을 쪼개어 쓰는 것에 대한 법적인 선례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일련의 저작권 위반 소송이 힙합 음반 제작에서 “샘플 클리어링Sample Clearing"(역자 주 - 샘플링에 앞선 저작권 확인)을 필수적인 측면으로 만들어내기 전까지 말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마침내 샘플 도둑들에 대해 공세를 취했다. 그 중 하나는 브라운의 리듬들을 야금야금 훔쳐가서 만든 풀 포스Full Force의 1988년 발표곡 “I'm Real”이었다. 브라운은 이 '도둑들biters'에게 ‘음반에서 내 목소리를 삭제하라, 내가 충분한 돈을 받을 때까지’라고 하면서 모든 모방범들에게 ‘내 물건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by BaronSamdi | 2009/12/02 17:37 | "F"unkatolog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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